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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생식물을 활용한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활용한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조우(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

2022년 몬트리올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전 세계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손실의 심각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전 세계 6만여 수목 종 가운데 약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 중 2,800여 종은 이미 ‘위급(Critically Endangered)’ 단계에 해당한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지난 수년간 자생식물 보전 사업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과학적 보전과 실용적 복원, 국제협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모범 사례를 목격해왔다. 이는 한국이 생물다양성 보전 분야에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경로를 제시한다.

종자정보 빅데이터
생물다양성 보전의 출발점은 정확한 정보다. 어떤 종이 존재하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효과적인 보전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202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자생식물 종자정보 구축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산림청의 지원으로 5년간 1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단순한 종자 수집을 넘어 종자생물학(seed biology)에 기반한 체계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표로 한다. 2024년 말 기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자생식물 2,171종에 대한 40,374건의 종자정보를 확보했다. 이는 국제종자연구 선도기관인 영국왕립식물원(KEW) 밀레니엄시드뱅크가 2003년부터 20년간 축적한 종자정보데이터베이스(SID) 보유량 182,232건의 약 22% 수준을 불과 4년 만에 달성한 성과다.
더욱 주목할 점은 데이터의 질적 수준이다. 구축된 정보에는 종자 형태정보, 저장정보, 활력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종자의 수집부터 저장, 발아, 증식에 이르는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2025년 상반기 정식 운영을 앞둔 종자정보 공개 플랫폼 ‘씨앗피디아’는 이러한 데이터를 전 국민에게 개방함으로써 오픈사이언스(open science)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는 산림 내 작물 재래원종(CWR, Crop Wild Relatives) 연구다. 산림으로부터 기원한 재배작물의 야생 원종은 기후변화와 병해충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 미래 식량안보 확보를 위한 핵심 자원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공주대, 안동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49종 426점의 CWR을 확보했으며, 2025년까지 110종 1,100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금나무(블루베리 원종), 돌콩(콩 원종), 두메부추(양파 원종) 등의 계통분류학적 유연관계 규명은 신품종 개발의 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실제로 돌콩오일과 산마늘 추출물을 활용한 친환경 화장품 개발 사례는 생물다양성 보전이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다.

자생식물 복원 인프라
산림복원생태학(Restoration Ecology)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local seed for local restoration’, 즉 해당 지역의 자생식을 종자로 그 지역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유전적 적응력과 생태계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이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종자 공급 인프라가 부족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자생식물종자공급센터 구축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2025년 5월 준공된 국립세종수목원 자생식물종자공급센터의 진정한 가치는 기후대별·권역별 네트워크 구축에 있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긴 지형적 특성상 기후대가 다양하게 분포하며, 각 권역은 고유한 식생대(vegetation zone)를 형성하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북방계), 국립세종수목원(온대), 국립한국자생식물원(난온대) 등 권역별 공급센터는 생물지리학적으로 합리적인 종자 공급 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산림청이 추진하는 백두대간, DMZ, 도서·연안 지역 등 주요 생태축 복원사업에 과학적 정합성을 부여한다.
실제 복원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2022년 발생한 동해안 산불 피해지 복원에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피해 지역의 자생식물 종자를 직접 수집하여 복원 소재로 활용하는 친환경적 방법론을 적용했다. UN이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하는 ‘생태계 복원 10년 계획(UN Decade on Ecosystem Restoration)’의 원칙에 부합하는 모범적 접근이다.
아울러 이 인프라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사회생태학적 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2024년 기준 145개 임·농가가 자생식물 위탁재배에 참여하여 약 32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으며, 2019년부터 5년간 273개 농가가 참여해 2,388명의 고용과 2,207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냈다. 이는 생물다양성 보전이 지역사회에 실질적 혜택을 제공할 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전생물학(conservation biology)의 원칙을 입증하는 사례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BGSV)
경북 봉화 깊은 산중, 지하 40m 이상 깊이에 자리한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BGSV)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시드볼트와 함께 전 세계 식물종자를 영구 저장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두 시설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된다. 스발바르는 농작물 종자 보전에 집중한다면, BGSV는 야생식물 종자 보전을 전담한다는 점에서 세계 유일의 시설이다. 이는 단순한 시설의 차별화가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2025년 출범한 ‘글로벌 종자보전 지원 프로그램(Global Seed Conservation Grants Program)’은 BGSV가 단순한 저장시설을 넘어 국제 협력의 허브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과 협력하여 추진되는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유럽 등 19개국 20개 기관을 1차로 선정했으며, 52개 기관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BGSV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다.

미래 생태계 회복력을 향한 한국형 보전 모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제시한 2030년까지 1만 종의 식물을 보전한다는 목표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는 한반도 자생식물의 약 70% 이상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뜻이며, 생물주권(biological sovereignty)을 강화하는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기후변화로 식물 분포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지금, 자생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미래 생태계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장기 모니터링 데이터의 지속적 축적과 국제 공동연구 네트워크의 강화, 그리고 정책·과학 인터페이스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 마련 등 보전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후속 조치들이다.
결국 자생식물 한 종, 종자 한 점을 지키는 일은 미래 세대의 생태계 회복탄력성을 담보하는 일이며, 한국이 쌓아 올린 이 보전의 씨앗이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협력의 중심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식물처방전가을과 겨울,
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
해외 수목원 탐방살아 있는 나무 박물관,
미국 모튼수목원